행동이 선행될 때, 비로소 존재가 완성된다

'진짜 나'를 찾아 방황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실존의 철학,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올라 자신을 창조해 내는 삶

'진짜 나'를 찾아 방황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실존의 철학,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올라 자신을 창조해 내는 삶.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습관과 탁월성(Arete), 칼 융의 페르소나(Persona)와 자아 통합, 윌리엄 제임스의 행동 유발 이론

  • 목차
  • 서론: ‘진짜 나’를 찾겠다는 신화와 고립된 침묵
  • 본론: 행위라는 조각칼로 자아를 창조하는 철학적 세 기둥
  • 1.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 2. 칼 융의 페르소나와 윌리엄 제임스
  • 3. 아리스토텔레스의 습관과 탁월성
  • 결론: 오늘이라는 무대 위에서 당신의 존재를 연기하십시오

서론: ‘진짜 나’를 찾겠다는 신화와 고립된 침묵

나는 가끔 내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멈추어 서서 길고 깊은 방황을 시작하곤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 ‘진짜 나’라는 고정된 원형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 본질을 완전히 발견하기 전까지는 어떤 중요한 선택이나 행동도 섣불리 내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어”, “이것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야”라는 무의미한 유예 속에서, 우리는 자기 안으로만 자꾸 머물며 소중한 현재를 흘려보내곤 한다.

그러나,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정적인 사유 만으로 고정된 자아를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거대한 실존 적 착각이자 신화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채 방 안에 가만히 앉아있는 자아는 존재의 실체를 얻지 못한 채 한낱 막연한 가능성과 상상의 구름 속을 떠돌 뿐이다. 인간의 영혼과 정체성은 골방에 숨어 찾는 숨은 그림 찾기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거친 무대 위로 한 걸음 걸어 나가 몸을 던지는 ‘행동의 집적(Accumulation of Action)’을 통해 비로소 그 단단한 윤곽을 드러낸다.

“행동이 선행될 때, 비로소 존재가 완성된다.“

이 엄숙하고 단단한 명제를 철학적으로 직면하는 일은, 완성되지 않은 나를 탓하며 멈춰 서 있던 수동성의 삶을 청산하는 선언이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오늘 먼저 스스로 연기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그 미세한 움직임들이 비로소 나라는 존엄한 실존을 완성해 내기 시작한다.



본론: 행위라는 조각칼로 자아를 창조하는 철학적 세 기둥

  • 1.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실존은 본질에 앞서며, 인간은 행위의 합(Sum of Actions)이다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정해진 설계도 없이, 스스로의 선택과 행위로 자신을 저술해 가는 존재

프랑스의 실존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설명하며 그 유명한 명제를 던졌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

칼이나 의자 같은 사물은 만들어지기 전 이미 용도와 목적(본질)이 정해져 있지만, 인간은 아무런 미리 정의된 본질 없이 세상에 먼저 던져진 존재(실존)다. 인간은 오직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직접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신이 행한 행동의 합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내가 어떤 가치관을 입으로 외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실제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발걸음을 내딛 얻는가 이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마치 이미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오늘 먼저 행동으로 실천해 낼 때, 추상적이었던 나의 존재는 마침내 선명한 실체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 2. 칼 융의 페르소나와 윌리엄 제임스: 연기가 곧 진짜 얼굴이 되는 연금술
칼 융(Carl Jung)의 페르소나(Persona)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행동이 감정을 만든다'
되고 싶은 자아를 먼저 연기할 때, 가면(Persona)은 내면의 정체성이 된다

분석 심리학자 칼 융은 사회라는 무대 위에서 인간이 착용하는 외적 자아를 ‘페르소나(Persona, 가면)’라 불렀다. 흔히 가면이라고 하면 위선이나 위장을 떠올리기 쉽지만, 융의 관점에서 페르소나는 내가 세상과 소통하고 내가 지향하는 자아로 나아가기 위한 매우 유용한 실존 적 도구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 역시 “행동이 감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행동과 감정은 함께 움직인다. 따라서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행동을 조절하면, 통제할 수 없는 감정도 간접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미리 연기해 보는 행위는 거짓이 아니다. 용감한 사람처럼 어깨를 펴고 행동할 때 내면의 두려움이 사그라들고, 다정한 사람처럼 타인에게 손을 내밀 때 내 안의 온기가 실제로 피어나는 법이다.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역할을 매일 조금씩 다듬어 연기하다 보면, 마침내 그 가면의 형태대로 내면의 영혼이 채워지고, 가면에 나의 진짜 얼굴이 각인되는 거룩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 3. 아리스토텔레스의 습관과 탁월성: 벼려진 행위가 빚어내는 영혼의 성품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아레테(Arete)
반복적인 실천과 습관을 통해 내면화되는 지혜와 품격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탁월함, 즉 ‘아레테(Arete, 덕/품격)’는 타고난 성질이 아니라 반복적인 실천과 습관의 결과라고 보았다.

“우리가 건축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건축가가 되고, 수금 연주를 반복함으로써 수금 연주자가 되듯, 정당한 행위를 함으로써 정당한 사람이 되고, 용감한 행위를 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존재는 가만히 멈추어 서서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고 실천하는 지속적인 ‘행위의 과정’이었다.

우리가 탁월하고 단단한 인격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밀한 이론이나 고상한 사유만이 아니다. 작은 선의, 정직한 한마디, 시련 앞에서의 조용한 견딤이라는 작은 행동들을 하루하루 쌓아 올리는 실천이다.

그 반복되는 행동들이 내면의 근육으로 정착할 때, 주관적인 이상은 비로소 그 어떤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존엄한 인격과 존재감으로 화하게 된다.



결론: 오늘이라는 무대 위에서 당신의 존재를 연기하십시오.

‘행동이 선행될 때, 비로소 존재가 완성된다’는 깨달음은,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며 지쳐가던 우리에게 커다란 용기와 실존적 자유를 선사한다.

더 이상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 뒤로 숨어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마십시오. 아직 내 안에 확신이 서지 않았더라도, 내가 되고 싶은 그 사람의 걸음걸이로, 그 사람의 다정한 언어로, 그 사람의 당당한 태도로 오늘 하루의 무대 위에 올라서십시오.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내가 정성스럽게 읊어 나간 대사와 선택들은 결코 공중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작은 실천의 궤적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던 당신이라는 도화지 위에 그 어떤 예술 품 보다 눈부시고 단단한 ‘진짜 당신의 존재’를 완벽하게 조각 해 낼 것이다.

그러므로, 망설임을 털어내고, 지금 이 순간 스스로 원하는 당신의 모습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생각이 행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아간 당신의 정직한 발걸음이 존재를 완성합니다. 오늘 당신이 연기하고 실천한 그 모든 다정한 행위들이,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당신만의 실존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Author: 엄 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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