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지스러운 틀을 벗어던지고 내면의 결을 따라 타인과 세상을 향해 버텨내는 삶의 실존적 기품
장자의 '장자(莊子)적 득의(得意)'와 무위자연(無爲自然),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적 자유,
최인철의 프레임과 심리적 관용, 칼 로저스의 진실성(Congruence)
- 목차
- 서론: 결을 무시한 삶이 가져오는 거친 균열들
- 본론: 내면의 결을 읽고 관념을 삶으로 번역하는 여정
- 1. 장자의 기술(技藝)과 마음의 결: 억지스러움(無爲)을 거두고 순리대로 읽기
- 2. 칼 로저스와 사르트르: 진실한 내면의 일치와 실존적 주체성
- 3. 마음의 결이 만들어내는 온기: 세상을 향한 심리적 관용과 선한 영향력
- 결론: 찰나의 삶 속에서 내면의 결을 다듬는 목수들에게
서론: 결을 무시한 삶이 가져오는 거친 균열들
목수(木手)가 오랫동안 결이 고운 원목을 다룰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은 나무가 지닌 본래의 ‘결(Grain)’을 무시하고 강제로 톱날이나 칼날을 밀어 넣는 행위다. 나무의 나뭇결을 역행 하여 칼을 대면 아무리 비싼 수종이라 한들 어김없이 결이 찢어지고 표면은 거칠게 갈라지며 끝내 가구로서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만다.
반대로 결의 방향을 찬찬히 읽어내고, 그 흐름에 맞추어 대패질을 할 때 나무는 특유의 매끄러운 단단함과 고유한 결을 찬란하게 드러낸다.
우리의 삶과 마음 역시 이 나뭇결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수많은 현대인들이 겪는 내면의 서글픈 허기와 고통은, 자신이 타고난 마음의 결을 무시한 채 세상이 강요하는 일률적인 정답과 타인의 기준이라는 거친 칼날을 내면에 억지로 대어왔기 때문이다. 내 가슴속에서는 서늘한 외로움과 쉬어가라는 신호가 울리고 있음에도, 경쟁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타성의 틀에 스스로를 맞추느라 내면의 결은 찢겨나가고 표면은 상처로 점철되었다.
‘마음의 결대로 읽고 철학처럼 산다’는 것은 단순한 방임이나 이기적인 고립을 의미하지 않다. 그것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결, 바람과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자연스러운 결을 정직하게 읽어 내리고, 그 사유의 결을 삶의 구체적인 행동과 철학적 기품으로 승화 시켜 세상을 향해 실천해 나가는 실존적 주체성의 회복이다.
본론: 내면의 결을 읽고 관념을 삶으로 번역하는 여정
- 1. 장자의 기술(技藝)과 마음의 결: 억지스러움(無爲)을 거두고 순리대로 읽기
《장자(莊子)》의 포정해우(庖丁解牛)와 무위자연(無爲自然)
인위적인 틀을 내려놓고 고유한 마음의 결을 따라가는 삶의 지혜
《장자》에는 소를 잡는 명인 포정의 이야기인 ‘포정해우(庖丁解牛)’가 등장한다. 포정의 칼날은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베었음에도 방금 숫돌에 간 것처럼 날카로움을 유지한다. 그 비결을 묻는 왕에게 포정은 말한다. “나는 눈으로 소를 보지 않고 마음의 결을 따라 칼을 움직입니다. 소의 뼈와 살 사이의 자연스러운 틈을 따라 칼을 넣을 뿐, 결을 거슬러 뼈를 강제로 끊으려 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세상을 읽어 내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포정의 칼날과 같은 ‘결을 읽는 지혜’다.
우리는 마음을 읽을 때 조차도 섣부른 당위(“마땅히 이래야만 한다”)나 편견의 틀을 가지고 내면을 억압하곤 한다. 불안이나 슬픔이 찾아오면 그것을 내 마음의 자연스러운 상흔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왜 이런 나약한 감정을 느끼는가”라며 또다시 거친 잣대로 가슴을 짓눌러 버린다.
그러나 철학적 삶은 내 안의 기쁨과 슬픔, 심지어 낯선 방황조차도 나라는 고유한 존재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나뭇결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마음의 결을 있는 그대로 읽어 내릴 때, 비로소 우리는 뼈와 살 사이의 틈을 부드럽게 지나는 칼날처럼 인생의 거친 풍랑 속에서도 상처 입지 않고 매끄럽게 헤엄쳐 나갈 수 있다.
- 2. 칼 로저스와 사르트르: 진실한 내면의 일치와 실존적 주체성
칼 로저스의 진실성(Congruence)과 사르트르의 실존적 자유
타인의 무대를 연기하지 않고 내 안의 사유를 세상으로 투사하기
인간 중심 심리학의 거장 칼 로저스는 인간이 가장 건강하고 단단해지는 순간을 ‘진실성(Congruence)’, 즉 내면의 진실한 경험과 외적인 표현이 일치할 때라고 말했다. 내가 느끼는 내면의 결을 속이고 타인의 기대를 연기할 때, 인간은 자아의 균열을 경험하며 깊은 고독에 빠진다.
사르트르 역시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외치며, 타인이 정해 놓은 본질이나 역할이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는 행위를 ‘기만(Mauvaise foi)’이라고 비판했다.
마음의 결을 읽는 일에 그치지 않고 ‘철학처럼 산다’는 것은, 타인이 만들어놓은 성곽 안에서 연극배우처럼 남의 대사를 읊는 삶을 거부하는 일이다. 내가 읽어낸 내면의 사유를 바탕으로 나만의 철학적 좌표를 세우고, 그 좌표에 따라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 그것이 바로 세상의 소란함 속에서도 내 영혼의 고유한 결을 잃지 않는 진정한 실존적 자유다.
철학처럼 산다는 것은 거창한 학술적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내가 선택한 문장과 사유에 정직해지며, 내 안에서 우러나온 철학을 매일의 일상 속 행동으로 번역해 내는 삶의 고결한 실천이다.
- 3. 마음의 결이 만들어내는 온기: 세상을 향한 심리적 관용과 선한 영향력
최인철의 《프레임》과 철학적 관용(Tolerance)
나를 정직하게 안아든 자가 타인의 결을 보듬는 공감의 연대
내 마음의 결을 정직하게 읽고 안아본 사람만이 비로소 타인의 가슴속에 새겨진 찢기고 거친 결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최인철 교수가 이야기하듯, 삶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나 중심의 지적 오만에서 벗어나 깊은 공감의 사유로 확장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향해 ‘심리적 관용(Tolerance)’을 베풀 수 있게 된다. 나 역시 수많은 방황과 상처 속에서 나만의 결을 찾아온 존재이기에, 내 곁의 타인 또한 저마다의 아픈 결을 다독이며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를 정직하게 읽어낸 철학적 사유는 결코 골방 안의 외로운 자족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의 허물과 부족함을 무자비하게 단정 짓는 세상의 차가운 정답 앞에서, “그에게도 저마다의 숨겨진 사연과 결이 있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위로의 언어로 번역된다.
내 안의 철학이 일상의 관용과 공감으로 흘러넘칠 때, 우리는 비로소 콘텐츠를 디자인하듯 사람들의 지친 가슴속에 선한 영향력과 깊은 울림을 전하는 아름다운 서사적 존재가 된다.
결론: 찰나의 삶 속에서 내면의 결을 다듬는 목수들에게
삶은 수많은 무늬와 단면을 남기며 지나가는 거대한 나이테다. 우리는 모두 세상이라는 목공소에서 자기 자신이라는 고유한 원목을 다듬어 가는 영원한 목수들이다.
세상이 제시하는 매끈한 플라스틱 같은 규격품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지 말자. 타인의 잣대에 밀려 당신만의 귀한 결을 찢어발기지 말자.
잠시 멈추어 서서 당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결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라. 그곳에는 당신이 살아온 눈물과 기쁨, 고독과 환희가 겹겹이 쌓아 올린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찬란한 결이 숨 쉬고 있다.
그 결을 따라 마음을 정직하게 읽어 내리고, 그 사유의 뼈대를 붙잡고 오늘 하루를 철학처럼 진실 되게 살아보자.
“타인의 무대를 연기하기 위해 당신의 결을 찢지 마십시오. 마음의 결을 따라 정직하게 읽고, 당신만의 철학으로 오늘을 살아낼 때, 당신은 비로소 시공간을 가로 지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단단한 영혼의 작품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Author: 엄 태준